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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사단법인 글로벌평화녹색문화원 &amp;gt; 북관대첩기념사업회 &amp;gt; 북관대첩비 관련 보도자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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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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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 운동</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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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4pt;"><strong><img title="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src="/data/editor/1807/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alt="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br style="clear:both;" />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 운동</strong></span></p><p>(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 다양한 캠페인 벌여</p><p> </p><p>  ‘우리 문화와 함께 한 100년, 미공개 주요 명품 전시’가 9월 22일부터 11월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해외로 유출된 중요 문화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전시된 유물 202점 가운데 박물관이 대여·전시하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8건 10점으로 전시물의 5%가량을 차지한다. 이 중 보스턴미술관, LA카운티박물관에서 대여한 우리 문화재의 경우에는 800달러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져왔다. 우리 문화재를 전시하는 데 임대료까지 지불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p><p> </p><p><strong>해외유출문화재 76000점 중 11% 환수</strong></p><p>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규모가 개인 소장을 제외하고 76000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처음 환수가 시작된 1955년 이후 국내에 돌아온 문화재는 2009년 9월말 현재 파악된 바로는 10개국 8155점으로 11%에 조금 못 미치는 수치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약 45%는 일본에 가 있는 상태다. 상당수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중에 약탈이나 불법 매매 등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된 것들이며 6.25전쟁을 전후해서 미국으로도 많은 문화재가 반출된 바 있다.</p><p>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 소재 문화재 구입예산으로 2008년 42억1000만원, 2009년 39억1000만원을 책정한데 이어 2010년 예산안으로 36억3000만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박물관은 해외 소재 문화재 구입예산을 2008년의 경우 사용한 것이 전무하다. 2009년 9월말 현재까지도 집행액이 없는 상태이다. 박물관의 해외 문화재 환수현황은 2008년 1건(일본, 한국명문다완), 2009년 9월말 현재 2건(미국, 철조보상형좌상/호주, 수군조련도병풍)으로 총 3건 모두 기증받은 것이다.</p><p> </p><p><strong><span style="color:rgb(58,50,195);font-size:12pt;">해외불법 유출 문화재반환 운동은 정치적, 종교적 지혜와 유연한 자세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이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고난도 외교수단이 필요하다.</span></strong></p><p> </p><p><strong>2005년 ‘북관대첩비반환운동’ 본받아야</strong></p><p>  해외불법유출문화재 환수는 그 물리적 의미를 넘어 우리 조상의 혼을 되찾아 오는 것과 같다. 이런 문화재환수 운동의 귀감이 되는 사례가 되는 것이 ‘북관대첩비반환운동’ 이다. </p><p> </p><p>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란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鄭文孚)장군이 최초의 의병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을 기념해 숙종33년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에 세워진 승전기념비다. 일본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신사에 100년 동안 방치된 북관대첩비 반환은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p><p>  2005년 10월 러·일 전쟁(1905년) 당시 일본에 강탈된 북관대첩비를 100년 만에 한국으로 되찾아왔다. 북관대첩비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되기까지 수많은 애국시민과 단체의 힘겨운 반환운동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2005년 1월 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를 발족시킨 본부장 박근목의 오랜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면밀한 애국충정이 있었다.</p><p>  박근목 본부장은 오랜 세월 반환운동에 참여하였던 애국단체들을 규합해 북관대첩비환국공동추진 조인식을 거행하는 등 40여개 보수단체와 각계 대표 33인의 발기인을 구성해 조직적인 운영과 지휘체계를 확립해 정부창구를 단일화시켜 일본과 북한 당국자 간 민간외교를 통해 3국을 총괄하는 반환 연합 작전사령관 역할을 감당하였다.</p><p>  이후 87주년 맞은 2006년 3·1절,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 임명리에 북관대첩비는 복원됐다. 이날 오전 서울을 떠나 북한 개성에 육로를 통해 도착한 북관대첩비는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린 ‘북관대첩비 인도 인수식’을 거쳐 북측에 인도됐다. 이 일은 한국과 북한, 일본정부간 민간외교의 쾌거로 볼 수 있으며, 남북 공동의 실천의지를 실행한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 와 북한의 본래 있던 자리로 복원시킨 것은 우리 한 시대의 문화의 역사가 있어야 했던 곳,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과 다름없다.</p><p> </p><p><strong>제2의 북관대첩비반환운동이란?</strong></p><p>  북관대첩비반환을 계기로 민족 동질성 회복은 물론 한·일 관계에 밝은 미래를 모색한 역사적 사건을 승화시키기 위해 (사)한민족문화선양회 부설 ‘북관대첩기념사업회’에서 ‘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 국민의 참여가 있는 공연·출판·전시회를 통한 캠페인을 벌이고, ‘해외 불법유출 문화재 되찾기 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조성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국민의 움직임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국제기구 창설과 남북 화해·협력의 장을 조성할 것이다.</p><p>  2010년 봄, 서울에서 공연을 계획 중인 국악오페라 ‘북관대첩’은 판소리와 한국무용, 성악, 오페라적인 무대요소가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문화재청과 한민족문화선양회가 주최하고, 한민족문화선양회 부설 예술단이 주관해 이루어진다. 또한 2009년 12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국악콘서트 ‘북관대첩’이 의정부시와 한민족문화선양회의 주최로 열릴 계획이다.</p><p>  다양한 문화적 접근으로 해외불법유출 문화재 반환 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문화행사를 통해 문화재를 되찾아오려는 의미 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혼이 깃든 해외불법유출문화재반환 운동은 정치적·종교적 슬기로운 지혜와 유연한 자세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와 성찰로 영적인 통찰력과 혜안이 열린 조화와 균형 잡힌 고난도 외교수단을 동반한다. 때문에 해외불법유출 문화재 반환문제는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외교통상부나 문화재청 등 정부기관이 발 벗고 나서야 할 일이다. 2005년에 있었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처럼 끈질긴 요구와 노력으로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지속 되어야 할 것이다.</p><p> </p><p>&lt;시사데일리뉴스24 -80P~81P&gt;</p><p 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strong>취재 차혜진 기자</strong></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1 Nov 2009 00:00: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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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월간조선 뉴스룸 칼럼] 한국 최초로 日人 승려 추모 사리탑, 경주에 세워지다!</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6</link>
<description><![CDATA[<p>가을인가 싶더니 어느새 겨울이 다가왔다. 경제도 어려운데 날씨마저 사람들을 괴롭힌다. 필자는 지난 17일 새벽 서울역을 출발하는 KTX를 타고서 경주에 갔다. 경주역에서 택시를 타고서 경주 자비사(주지: 현도 스님)로 달렸다.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柿沼洗心, 1932-2009)스님을 추모하는 사리탑 제막식이 있어서다. 이 날의 제막식에는 박삼중 스님을 비롯해서 현도 스님, 박태승 전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장, 박근목 북관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200여 명의 신도들이 참가했다.<br /> <br />9층 사리탑의 상단에는 불사리·목련존자사리·사리불존자사리가 봉안됐고, 하단에는 故 가 키누마 센신 스님의 유품(머리털)이 안치됐다.<br /> </p><div style="padding-left:15px;float:right;"><img width="300" title="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525_2414.jpg" alt="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525_2414.jp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912/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525_2414.jpg" /><br /><span style="color:rgb(0,117,200);font-size:9pt;">﻿추모 사리탑의 제막식 모습 </span> </div><p><br /><strong>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누구일까.</strong><br /><br />그는 국적을 초월해서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실천했던 스님이었다. 스님은 한·일불교복지협회 일본 측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한국 측 회장인 박삼중 스님과 한·일 불교문화교류에 앞장서기도 했다. <br />   <br />스님은 불교문화교류를 넘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달래는 일도 해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조선인의 귀와 코를 베어가 묻어버린 귀무덤(耳塚)과 코무덤(卑塚)의 환국을 주도했던 것이다. <br /><br />이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길주에서 의병대장 정문부(1565-1624) 장군이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1562-1611)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건립했던 북관대첩비의 환원도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이 북관대첩비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가져가서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었다. 이 비는 한국으로 환원된 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관북,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과 공로가 1500여 글자로 기록돼 있다. <br /><br /><strong>한국인도 못한 일을 일본 스님이 해</strong><br />   <br />몸이 불편한데도 불구하고 제막행사에 참가한 박삼중 스님은 법문을 통해서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추모탑이 세워지게 된 배경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br /><br />“요즈음 한일 관계가 너무나 좋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스님의 추모 사리탑을 세운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스님은 한국인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신 분입니다. 일본에 있던 귀(耳)무덤과 코(鼻)무덤을 한국으로 이장시켜서 영혼을 달랬고, 일본군이 탈취해간 북관대첩비를 제자리에 놓이게 했으며, 일본의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가 송두리째 뽑아간 울산동백(오색팔중산춘)을 원산지로 귀환토록 하셨습니다... 오늘(11월 17일)은 스님께서 열반하신 10년이 되는 날입니다. 스님이 열반하신 그 날에 서라벌 남산의 끝자락과 토함산을 바라보는 중간 지점인 경주자비사 경내에 추모 사리탑이 세워진다는 사실이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p><p> </p><div style="padding-right:15px;float:left;"><p><img width="426" title="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615_064.png" alt="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615_064.pn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912/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615_064.png" /><br /><span style="color:rgb(0,117,200);font-size:9pt;">법문을 하는 박삼중 스님 </span></p><p> </p></div><p> </p><p>또한, 삼중 스님은 일본 후쿠오카에 있는 난조인(南藏院)의 하야시 가쿠죠 주지 스님이 오랫동안 미얀마에서 베푼 자비의 답례로 그 나라의 불교기관에서 증정 받은 사리(舍利)의 일부를 기증한 일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난조인은 세계 최대의 청동 와불상(臥佛像)이 있는 사찰로 유명하다.<br /> <br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삼중스님의 법문은 1시간 30분 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자리를 이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br /> <br /><strong>북관대첩비의 환원은 국가가 아닌 민간차원의 쾌거</strong><br />   <br />가키누마 센신 스님이 살아있을 때 여러 차례 만났으며, 북관대첩비 환원 당시 한국범민족본부장이었던 박근목(73) 이사장도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br /> <br />“박삼중 스님이 말씀하신바와 같이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22년 간 한일 우호증진에 진력하신 분입니다. 저는 당시 북관대첩비 환원 실무본부장이었습니다. 북관대첩비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북관대첩비의 환원은 국가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이뤄진 것 아닙니까? 정부도 이러한 일에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br />  </p><p> </p><p><span style="color:rgb(0,117,200);font-size:9pt;"><img src="/data/editor/2009/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1967_2234.jpg" title="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1967_2234.jpg" alt="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1967_2234.jpg" /><br style="clear:both;" /> </span></p><p><span style="color:rgb(0,117,200);font-size:9pt;">추모 사리탑 제막식에 참가한 박근목 북관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 </span></p><p> <br />박근목 이사장은 “문화와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비는 일본으로 간 지 100년(2005년 10월)만에 고국에 돌아왔고, 다음 해(2006년 3월 1일)에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덧붙였다. 그 중심에 가키누마 센신 스님이 있었던 것이다<br /> <br />추모 사리탑 제막식 참석을 위해서 대구에서 온 박태승 전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장도 탑의 의미 부여를 새롭게 했다.<br /> <br />“석가탑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것이라면, 오늘의 추모 사리탑은 현재와 미래를 잇는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큰 업적을 남긴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어나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br />  <br />통영에서 온 여성 신도도 “같은 동포끼리도 말로는 우호(友好)를 외치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 스님이 행동으로 우호를 보여주심에 있어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br /> <br /><strong>‘우호증진’을 바라는 순수한 마음</strong><br />   </p><p>​</p><p><img width="600" title="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755_3322.jpg" alt="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755_3322.jp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912/914db8c625386c4642186257754de1f5_1577166755_3322.jpg" /><br style="clear:both;" /><span style="color:rgb(0,117,200);font-size:9pt;">사리탑에 봉축하는 신도들 </span></p><p> </p><p> </p><p>추모 사리탑이 세워지기까지 모든 것을 주도한 현도 스님은 “조용히 행사를 마무리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놀랐다”면서 “故 가키누마 센신 스님과 후쿠오카 난조인의 하야시 주지 스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추모 사리탑 제막행사는 참석자가 다함께  &lt;공양예참&gt;을 올림으로서 마무리됐다. <br /> <br />&lt;삼계 모든 중생들의 길잡이시고<br />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신<br /> 우리 스승 석가모니 부처님께<br /> 신명 다해 지심(至心)으로 공양합니다.&gt; <br /> <br />이날의 추모 사리탑 제막식은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공적을 기리는 것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갈등을 잠재우고 ‘우호증진’을 바라는 민간인들의 순수한 마음도 담겨 있었다.<br />  <br />행사가 끝이 났는데도 신도들은 탑 앞에서 합장을 하면서 새로 탄생한 추모 사리탑의 의미를 오랫동안 되새기고 있었다.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6 Dec 2019 16:14: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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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2019.11.17일] 한국·일본·북한 평화의 접점, 북관대첩비에 답이 있어</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5</link>
<description><![CDATA[<p>지난 11월 17일 경주 자비사(주지: 현도스님)에서 일본의 가키누마 센신(柿沼洗心, 1932-2009)스님을 추모하는 사리탑 제막식이 있었다. 이 날의 제막식에는 박삼중 스님을 비롯해서 현도 스님, 박태승 전 6·25참전소년소녀병전우회장, 박근목 북관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 등 200여 명의 신도들이 참가했다.</p><p> </p><p>9층 사리탑의 상단에는 불사리·목련존자사리·사리불존자사리가 봉안됐고, 하단에는 故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유품(머리털)이 안치됐다.</p><p>     </p><div style="padding-right:15px;float:left;"><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width="300" title="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468_1214.jpg" alt="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468_1214.jp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912/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468_1214.jpg" /><br style="clear:both;" />가키누마 센신 스님의 추모 사리탑 제막식 </p></div><p>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국적을 초월해서 한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을 했다. 스님이 행한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길주에서 의병대장 정문부(鄭文孚, 1565-1624) 장군이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1562-1611)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 건립했던 북관대첩비의 환국이 대표적이다.</p><p> </p><p>북관대첩비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전리품으로 가져가서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방치돼 있었다. 이 비(碑)는 한국으로 환국된 후, 다시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관북, 지금의 함경도 지역에서 일어난 의병들의 활동과 공로가 1500여 글자로 기록돼 있다.</p><p> </p><p>가키누마 센신 스님 추모 사리탑 개막식에서 만난 박근목(73) 북관대첩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북관대첩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p><p> </p><p>“북관대첩비는 정문부 장군이 최초로 의병(義兵)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을 기념해서 숙종 33년(1709)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현 김책시)에 세워진 승전기념비입니다. 1905년 러·일 전쟁 때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제2사단 17여단장 이케타(池田) 소장이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가져간 뒤 항일 의병의 기상을 제압하고자 탑신에 큰 바위 돌을 올려놓은 채로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었습니다. 2005년 10월, 100년 만에 한국·일본·북한 간 최초의 민간 협력으로 반환받아 이듬해 북한에 인도되어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시에 복원된 국보급 문화재입니다. 북한의 국보유적 193호로 지정되어 있지요.”</p><p> </p><p>박근목 이사장은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면서 말을 이어갔다.</p><p>“북관대첩비의 환국에 있어서 가키누마 센신 스님이 당시 결정적인 역할을 하신 것입니다. 스님은 22년 간 한일 우호증진에 진력하신 분입니다. 저는 당시 북관대첩비환국범민족운동본부 본부장이었습니다. 북관대첩비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한 시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정부도 민간에만 맡기지 말고 이러한 일에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p><p> </p><div style="padding-left:15px;float:right;"><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width="300" title="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546_5673.jpg" alt="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546_5673.jp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912/fa7221cf038e435cec0548d9cf25ac01_1575508546_5673.jpg" />   <br />정문부 장군 묘역 내 북관대첩비(복사)</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앞에서의 박근목 이사장 <br /></p></div><p>북관대첩비는 일본으로부터 10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 2005년 10월의 일이다. 그리고 2006년 3월 1일에 북한으로 돌려보내졌다. 그 중심에 가키누마 센신 스님이 있었던 것이다.</p><p> </p><p>“북관대첩비 환국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일본-북한-중국-러시아를 관통한 역사와 문화적인 연속성속에 세계평화의 원심력이 된 백의민족의 나라 한반도가 일본과 음영(陰影)하고 냉랭한 외교지형의 역학관계를 민간 외교로 풀어가야 합니다.”</p><p> </p><p>박근목 이사장은 ‘민간차원의 국제적인 협력과 이해와 화합의 장(場)을 마련해 동북아시아 유관국들이 이해를 충족시킬 해법을 제시하고, 공통된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북관대첩비의 환국이라고 강조했다.</p><p> </p><p>그러면서 그는 “제2의 ‘북관대첩비-문화콘텐츠’를 평화지렛대로 삼아 ICT(정보통신기술)산업으로 승화시켜 한반도통일기반조성과 동북아 평화안정 구축을 통해서 아세아태평양을 넘어 세계평화의 모멘텀(Momentum)을 제시하고자한다”고 했다.</p><p> </p><p>‘한국·일본·북한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의 접점(接點)을 찾는 것이 북관대첩비에 있다’는 것이다.</p><p> </p><p>이날 세워진 9층 평화 추모 사리탑은 한반도 통일기반 조성과 동북아 평화 구축의 플랫폼으로 한일간 미래지향적 관계정립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였다.</p><p> </p><p><img src="/data/editor/2009/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2246_6982.jpg" title="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2246_6982.jpg" alt="6c18718802e19c414586881204d36642_1599092246_6982.jpg" /><br style="clear:both;" /> </p><p> </p><p>장상인 발행인 <a href="mailto:renwqs@renews.co.kr">renwqs@renews.co.kr</a></p><p>&lt;저작권자 © 한국부동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gt;</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26 Dec 2019 16:13: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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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종교뉴스] ‘북관대첩기념사업회’ 발대식 대성황 개최</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4</link>
<description><![CDATA[<p>북관대첩기념사업회’ 발대식 성황</p><p> </p><p>민간 외교의 쾌거, 북관대첩비 일본정부로부터 반환 계기<br />해외 불법유출 문화재 되찾기 운동, 애국단체 총 집결</p><p> </p><p>(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이사장 겸 총괄회장 박근목)와 경제문화사절단(단장 고덕신)이 주최하고 (사)한민족운동지도자연합회(총재 김형주)와 나라사랑국민운동본부(총괄본부장 박종철)가 주관한 ‘북관대첩기념사업회 발대식’을 북관대첩비 반환 제7주년을 기념하여 ‘해외불법유출 문화재 반환 운동’ 일환으로 4일 국회헌정기념관에서 정관계, 종교계 및 사회단체 증의 유명인사 5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성대히 개최되었다.</p><p> </p><p>북관대첩기념사업회는 임진왜란 당시 한민족의 자존, 충절의 수범을 보인 정문부 장군이 이끌었던 의병들의 고귀한 순절을 기리고 일본에 불법 강탈되었던 ‘북관대첩비’를 일본 정부로부터의 반환, 민간 외교의 쾌거를 이룬 계기로 해외 불법 유출문화재 되찾기를 위한 제2북관대첩 반환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우국충정의 민간 애국단체이다.</p><p> </p><p>(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이사장 박근목)는 2005년 1월, 국보급 문화재인, 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를 발족시켜 그 해 10월, 민·관 공동노력과 북한 당국의 협력으로 일본 정부로부터 100년 만에 북관대첩비를 반환받아 북한에 인도하여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에 복원케 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정착에 역사적 단초를 구축했다.</p><p> </p><p>이 날 행사에는 상임고문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 전 북관대첩비환국범민족운동 본부장 박근목이사장과 한일불교복지협회 초산(樵山)스님(전북관대첩비환국범민족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하갑순 이사장 (전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 등 33인의 발기인이 채택한 결의문이 발표됐다.</p><p> </p><p>결의문은 ‘우리는 시대적 사명과 자긍심으로 굳건한 믿음과 뜻을 한데모아 북관대첩기념사업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는 금력이나 권력, 기타 불순한 세력의 유혹을 단호히 배격하고 오로지 해외불법유출문화재 반환에 매진한다.  우리는 충, 효, 신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역사바로세우기에 심신을 다 바친다’의 3개 항이다.</p><p> </p><p>결의문 채택 후에는 박근목이사장의 ‘천황과 일본정부에 대하여’,  이성근대표회장이 ‘중국정부에 대하여’, 김형주 공동회장이 ‘북한 당국에 대하여 잃었던 문화재를 찾기 위해 남북 간에 전담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는 메시지 전달이 있었다.</p><p>이후 “북관대첩 반환과 복원”에 대한 영상물이 방영됐다.</p><p> </p><p>이날 발대식에는 상임고문 이한동(전 국무총리), 정운태(전 대한노인회서울회장), 초산 엄태종(전 북관대첩비환국 범민족운동본부 공동집행 위원장), 김상원 (전 대법관), 라용화(대한불교임제종 종정), 박제상9전 국회의원, 치안문제연구소 이사장),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 박근목((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이사장), 이성근(전 한성대학교총장), 정원박(한반도세계기획단단장), 권병도((주)온지구부사장), 김형주((사)한민족운동지도자연합회 총재), 김병조(PTL 코리아(주) 회장), 국효문(호남대학교 교수), 김혜정(경희대 혜정박물관 관장), 박종철(월롱교회 담임목사), 박현수(자유수호 호국운동국민연합 총재), 이광규(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가재모(이서울포스트 대표이사), 김호규9전 서울신문 비서실장) 등이 참석했다.<br /></p><p><img title="aa70c695480922e058f9c518329c8ee5_1509425011_531.gif" src="/data/editor/1710/aa70c695480922e058f9c518329c8ee5_1509425011_531.gif" alt="aa70c695480922e058f9c518329c8ee5_1509425011_531.gif"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5 Jul 2012 13:40:2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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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 운동</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3</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4pt;"><strong><img title="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src="/data/editor/1807/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alt="bc5a95d31de886aeba7458d1e5502b5e_1531479666_7952.jpg" /><br style="clear:both;" />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 운동</strong></span></p><p>(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 다양한 캠페인 벌여</p><p> </p><p>  ‘우리 문화와 함께 한 100년, 미공개 주요 명품 전시’가 9월 22일부터 11월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박물관 100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번 전시를 통해 해외로 유출된 중요 문화재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전시된 유물 202점 가운데 박물관이 대여·전시하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8건 10점으로 전시물의 5%가량을 차지한다. 이 중 보스턴미술관, LA카운티박물관에서 대여한 우리 문화재의 경우에는 800달러의 임대료를 지불하고 가져왔다. 우리 문화재를 전시하는 데 임대료까지 지불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인 것이다.</p><p> </p><p><strong>해외유출문화재 76000점 중 11% 환수</strong></p><p>  최근 국정감사에서 문화재청은 해외로 유출된 우리 문화재의 규모가 개인 소장을 제외하고 76000점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 처음 환수가 시작된 1955년 이후 국내에 돌아온 문화재는 2009년 9월말 현재 파악된 바로는 10개국 8155점으로 11%에 조금 못 미치는 수치다.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의 약 45%는 일본에 가 있는 상태다. 상당수가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중에 약탈이나 불법 매매 등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된 것들이며 6.25전쟁을 전후해서 미국으로도 많은 문화재가 반출된 바 있다.</p><p>  국립중앙박물관은 해외 소재 문화재 구입예산으로 2008년 42억1000만원, 2009년 39억1000만원을 책정한데 이어 2010년 예산안으로 36억3000만원을 책정했다. 그러나 박물관은 해외 소재 문화재 구입예산을 2008년의 경우 사용한 것이 전무하다. 2009년 9월말 현재까지도 집행액이 없는 상태이다. 박물관의 해외 문화재 환수현황은 2008년 1건(일본, 한국명문다완), 2009년 9월말 현재 2건(미국, 철조보상형좌상/호주, 수군조련도병풍)으로 총 3건 모두 기증받은 것이다.</p><p> </p><p><strong><span style="color:rgb(58,50,195);font-size:12pt;">해외불법 유출 문화재반환 운동은 정치적, 종교적 지혜와 유연한 자세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통찰력과 혜안이 조화를 이룬 균형 잡힌 고난도 외교수단이 필요하다.</span></strong></p><p> </p><p><strong>2005년 ‘북관대첩비반환운동’ 본받아야</strong></p><p>  해외불법유출문화재 환수는 그 물리적 의미를 넘어 우리 조상의 혼을 되찾아 오는 것과 같다. 이런 문화재환수 운동의 귀감이 되는 사례가 되는 것이 ‘북관대첩비반환운동’ 이다. </p><p> </p><p>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란 임진왜란 당시, 정문부(鄭文孚)장군이 최초의 의병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을 기념해 숙종33년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에 세워진 승전기념비다. 일본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신사에 100년 동안 방치된 북관대첩비 반환은 약탈당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은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p><p>  2005년 10월 러·일 전쟁(1905년) 당시 일본에 강탈된 북관대첩비를 100년 만에 한국으로 되찾아왔다. 북관대첩비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되기까지 수많은 애국시민과 단체의 힘겨운 반환운동이 있었으며, 그 가운데 2005년 1월 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를 발족시킨 본부장 박근목의 오랜 경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주도면밀한 애국충정이 있었다.</p><p>  박근목 본부장은 오랜 세월 반환운동에 참여하였던 애국단체들을 규합해 북관대첩비환국공동추진 조인식을 거행하는 등 40여개 보수단체와 각계 대표 33인의 발기인을 구성해 조직적인 운영과 지휘체계를 확립해 정부창구를 단일화시켜 일본과 북한 당국자 간 민간외교를 통해 3국을 총괄하는 반환 연합 작전사령관 역할을 감당하였다.</p><p>  이후 87주년 맞은 2006년 3·1절,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 임명리에 북관대첩비는 복원됐다. 이날 오전 서울을 떠나 북한 개성에 육로를 통해 도착한 북관대첩비는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린 ‘북관대첩비 인도 인수식’을 거쳐 북측에 인도됐다. 이 일은 한국과 북한, 일본정부간 민간외교의 쾌거로 볼 수 있으며, 남북 공동의 실천의지를 실행한 역사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 와 북한의 본래 있던 자리로 복원시킨 것은 우리 한 시대의 문화의 역사가 있어야 했던 곳, 제자리로 돌려놓은 것과 다름없다.</p><p> </p><p><strong>제2의 북관대첩비반환운동이란?</strong></p><p>  북관대첩비반환을 계기로 민족 동질성 회복은 물론 한·일 관계에 밝은 미래를 모색한 역사적 사건을 승화시키기 위해 (사)한민족문화선양회 부설 ‘북관대첩기념사업회’에서 ‘제2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펼치고 있다. 전 국민의 참여가 있는 공연·출판·전시회를 통한 캠페인을 벌이고, ‘해외 불법유출 문화재 되찾기 재단’ 설립을 위한 기금조성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국민의 움직임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국제기구 창설과 남북 화해·협력의 장을 조성할 것이다.</p><p>  2010년 봄, 서울에서 공연을 계획 중인 국악오페라 ‘북관대첩’은 판소리와 한국무용, 성악, 오페라적인 무대요소가 어우러지는 형식으로 문화재청과 한민족문화선양회가 주최하고, 한민족문화선양회 부설 예술단이 주관해 이루어진다. 또한 2009년 12월 의정부 예술의 전당에서 국악콘서트 ‘북관대첩’이 의정부시와 한민족문화선양회의 주최로 열릴 계획이다.</p><p>  다양한 문화적 접근으로 해외불법유출 문화재 반환 운동이 펼쳐지는 것은 문화행사를 통해 문화재를 되찾아오려는 의미 깊은 시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민족혼이 깃든 해외불법유출문화재반환 운동은 정치적·종교적 슬기로운 지혜와 유연한 자세로 역사와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와 성찰로 영적인 통찰력과 혜안이 열린 조화와 균형 잡힌 고난도 외교수단을 동반한다. 때문에 해외불법유출 문화재 반환문제는 이에 대한 국민의 인식개선이 최우선되어야 할 것이고, 외교통상부나 문화재청 등 정부기관이 발 벗고 나서야 할 일이다. 2005년에 있었던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처럼 끈질긴 요구와 노력으로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지속 되어야 할 것이다.</p><p> </p><p>&lt;시사데일리뉴스24 -80P~81P&gt;</p><p align="right" style="text-align:right;"><strong>취재 차혜진 기자</strong></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1 Nov 2009 00:00: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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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동아일보] 북관대첩비 北에 반환될까...</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2</link>
<description><![CDATA[<p><img title="ac9f835adc858fa3a70a47a7e2c42d4f_1541388809_328.jpg" src="/data/editor/1811/ac9f835adc858fa3a70a47a7e2c42d4f_1541388809_328.jpg" alt="ac9f835adc858fa3a70a47a7e2c42d4f_1541388809_328.jpg" /></p><p><span style="color:rgb(125,125,125);font-size:.92em;">일본에서 북관대첩비 한국 반환운동을 펼쳐 온 가키누마 센신 스님은 북관대첩비의 북한 반환에 대해 한국 정부의 적극적 지지를 호소했다.-권재현기자 </span></p><p> </p><p>일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보관돼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가 일제의 강탈 100주년이 되는 2005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p><p><br />일본에서 북관대첩비 한국 반환운동을 펼쳐 온 일한불교복지협회 가키누마 센신(枾沼洗心·74) 스님은 13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관대첩비 반환이 가능하도록 한국 정부가 외교적 조치를 취해 달라”고 촉구했다.</p><p> </p><p>북관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 길주에서 조선 의병이 왜군을 격파한 것을 기념해 숙종 33년(1707년)에 세워진 승전비. 1905년 일본군이 강탈해 지금까지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해 왔다. 가키누마 스님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해 한일간에 해결하지 못한 3대 과제로 ‘임진왜란, 한일병합, 재일본 한국인 처우 문제’를 거론한 것을 듣고는 참회의 뜻으로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펼쳐 왔다고 밝혔다. </p><p> </p><p>그는 “‘북관대첩비를 일본에서 보관해봐야 득 될 것이 없다’며 야스쿠니 신사측을 설득해 ‘남과 북이 합의할 경우 반환할 수 있다’는 서약을 받아냈다”고 밝혔다. 99년에는 가이 토졸리 세계무역센터 총재를 통해 이형철 유엔주재 북한대사로부터 이를 인수하겠다는 서한도 받았다. 당시 부산항으로 반입해 판문점을 거쳐 북한에 인도한다는 계획이 세워졌으나 야스쿠니 신사측이 요구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동의가 이뤄지지 않아 무산됐다. </p><p> </p><p>그는 “세 번이나 반환운동을 추진했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포기하려다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한국을 찾았다”며 “청와대 등 한국의 정부기관을 다니며 좀더 적극적 자세를 부탁하려 한다”고 말했다. 가키누마 스님은“북관대첩비는 일본의 문화재로 지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야스쿠니 신사의 결정만으로 반환이 가능하다”며 “야스쿠니 신사측은 이를 북한에 바로 반환할 경우 한일관계가 거북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남한 정부 차원의 의사표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p><p> </p><p>권재현기자 <a href="mailto:confetti@donga.com">confetti@donga.com</a> <br style="clear:both;"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3 Jul 2004 19:30: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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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KBS 뉴스] 남북 대화 물꼬 트이나?</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1</link>
<description><![CDATA[<p><img title="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8098_3081.jpg" src="/data/editor/1811/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8098_3081.jpg" alt="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8098_3081.jpg" /> </p><p> </p><p>⊙앵커: 이번 만남은 그 동안 막혀 있던 남북대화의 물꼬를 터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br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지, 된다면 어떤 분야부터 대화가 필요한지 짚어보겠습니다. <br />계속해서 조일수 기자가 보도합니다. </p><p>​</p><p>⊙기자: 지난해 7월 대규모 탈북과 조문문제 등으로 얼어붙었던 남북 관계는 최근 부쩍 해빙조짐을 보였습니다. </p><p><br />조류독감 방역 지원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간 실무접촉이 시작됐고 소방헬기의 비무장지대 진입이 허용됐으며 술에 취한 월북자의 송환도 매끄러웠습니다. </p><p>​</p><p>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사회문화분야 교류를 위한 방북자는 400명으로 지난해 총수준을 회복했습니다. </p><p><br />여기에 북한에서 최근 대남사업 담당자 교체가 마무리됐고 시기적으로 지금이 보릿고개라는 점 등도 당국간 회담을 무르익게 만들고 있습니다. </p><p>​</p><p>⊙전현준(통일연구원 기획조정실장): 시기적으로는 식량이라든가 비료가 절실히 필요한 그런 시점입니다. <br />또 남북대화를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어떤 대외 개방 의지라든가 또 북미간 대화 의지, 이런 것들을... </p><p>​</p><p>⊙기자: <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따라서 당장 비료와 식량 지원을 회담과 북관대첩비 반환, 이산가족 상봉, 독도와 역사왜곡을 공동대처하기 위한 남북회담이 필요합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p><p>​</p><p>남북이 개최에 합의하고도 계속 연기되어 온 장관급 회담과 장성급 군사회담, 그리고 해운협력 실무협의도 바로 열릴 수 있습니다. </p><p>​</p><p>물론 이해찬 총리와 김영남 위원장이 당국간 회담에 합의했다기보다 필요성을 공감한 데 불과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p><p>​</p><p>하지만 남북이 모처럼 쌓은 대화 재개의 명분을 구체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경우 실제 남북 당국간 대화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이번 면담 결과가 향후 남북 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전망입니다. </p><p><br />KBS뉴스 조일수입니다.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Sat, 23 Apr 2005 21:33:01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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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KBS 뉴스]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필요성에 공감</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20</link>
<description><![CDATA[<p><img title="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680_7511.jpg" src="/data/editor/1811/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680_7511.jpg" alt="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680_7511.jpg" /> </p><p> </p><p><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앵커: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span><span style="color:rgb(0,117,200);">의가 열리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 오늘 남북간의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p><p> </p><p>이해찬 국무총리와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이당국자간 회담을 재개하자는 데 뜻을 같이 했습니다. </p><p> </p><p>자카르타에서 김현석 기자가 보도합니다. </p><p> </p><p>⊙기자: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5년 만에 이루어진 최고위급 만남. </p><p>​</p><p>⊙이해찬(국무총리): 반갑습니다. </p><p>이렇게 위원장님 뵙게 돼서... </p><p>​</p><p>⊙김영남(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어젯밤에 잘 주무셨습니까? </p><p>​</p><p>⊙기자: 오늘 면담에서 이 총리와 김 위원장은 화해와 협력의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되살려 당국자간 회담을 제개하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p><p>​</p><p><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양측은 구체적으로 일본에 있는 북관대첩비 반환 협상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재개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p><p>​</p><p>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재개에 대해서도 솔직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p><p>​</p><p>⊙이강진(총리공보수석): 북한의 김영남 위원장께서는 주변의 환경이 성숙되면 응하자는 입장을 말씀하셨고 이해찬 총리께서는 주변국들이 이런 환경이 조성되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는... </p><p>​</p><p>⊙기자: 컨벤션센터 양자회담장에서 이루어진 오늘 면담은 당초 계획보다 20분을 넘긴 40분 동안 진행됐습니다. </p><p>​</p><p>⊙김영남(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집약적으로 담화(얘기)하면 통일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 </p><p>​</p><p>⊙이해찬(국무총리): 당국자 회담이라든가 6자회담이라든가 이런 얘기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했습니다. </p><p>​</p><p>⊙기자: 오늘 면담은 국제회의에 함께 참석한 이상 만남을 갖는 것이 좋겠다는 남북간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주최국인 인도네시아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습니다. </p><p><br />자카르타에서 KBS뉴스 김현석입니다.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Sat, 23 Apr 2005 21:33:2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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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KBS 주요단신] 고속도로 시속 120㎞ 상향 추진 外 4건</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9</link>
<description><![CDATA[<p>⊙앵커: 주요 단신입니다. </p><p><br />여야 의원 26명은 오늘 입법공청회를 열어 편도 2차로 이상 일반도로의 경우 최고 속도를 시속 90km까지 상향조정하고 서울 올림픽대로와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는 시속 100km, 고속도로는 시속 120km까지로 각각 제한 속도를 높이도록 하는 방향으로 도로교통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p><div class="detail-body font-size">​</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서울시는 오늘 차량 통행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고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오는 5월 1일부터 남산 국립극장에서 서울타워를 지나 남산도서관으로 이어지는 남측 순환로 3.1km 구간에 승용차와 택시 통행을 전면 제한하고 대신 천연가스 순환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삼성과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업계는 표준이율이 다음달부터 연 4.75%에서 연 4.25%로 인하됨에 따라 각종 생명보험 상품의 보험료가 다음달부터 10에서 20% 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남북간 불교계는 오늘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고 일본 야스쿠니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임진왜란 의병장 정문부 장군의 북관대첩비를 돌려받아 함북 길주군 본래 자리에 옮긴다는데 합의했습니다. </span></strong></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span></strong></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야스쿠니 신사측은 지난 1일 한일 접촉에서 남북한이 합의할 경우 곧바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경주시의회가 전국 기초 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원전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에 대한 투표를 실시해 찬성 15표, 반대 4표로 찬성 결론을 내렸습니다. <br />이로써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유치운동에 나서고 있는 곳은 포항과 영덕, 울진 등 경북에서만 모두 4개의 지역으로 늘어났습니다. </div><div class="detail-body font-size"><br />간추린 소식이었습니다. </div>]]></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Mon, 28 Mar 2005 22:00:12 +0900</dc:date>
</item>


<item>
<title>[중앙일보] 북핵 해결 위해 실질 조치</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8</link>
<description><![CDATA[<p><img title="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6933_8136.jpg" src="/data/editor/1811/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6933_8136.jpg" alt="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6933_8136.jpg" /><br style="clear:both;" /><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노무현 대통령이 23일 오후 청와대를 방문한 남북 장관급 회담의 북측 대표단을 맞이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악수하는 이는 북측 단장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다. 김춘식 기자</span></strong></p><p> </p><p> </p><p>남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또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의 군사긴장 완화 문제 등을 다룰 장성급 회담을 재개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시기는 양측 군부가 협의하기로 했다. 8.15 광복 60주년을 계기로 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8월 26일부터 금강산에서 개최된다. </p><p> </p><p><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남북한은 23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15차 장관급 회담 마지막 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12개 항에 합의했다. 공동보도문은 남북 양측의 수석대표(북측은 단장)가 공동 기자회견에서 발표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p>
<div style="float:right;"><img title="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957_2076.gif" src="/data/editor/1811/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957_2076.gif" alt="e93e7676d350e730b0c36f06ddde1145_1541127957_2076.gif" /></div>
<div><br /> 남북은 11차 이산 상봉의 재개와 함께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착공을 하기로 했으며, 이를 위한 측량과 지질조사는 7월 중 끝내기로 합의했다. 6차 적십자 회담을 8월 중 열어 한국전쟁 당시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생사확인 등 인도적 문제를 협의키로 했다. <p> </p><p>특히 8.15를 맞아 이산가족 화상상봉을 시범적으로 개최하기로 합의했고 실무접촉은 7월 10일께 개성에서 하기로 했다. </p><p> </p><p>양측은 북한이 이번 회담에서 요청해온 예년 수준(40만t 규모)의 식량을 지원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문제는 7월 9일부터 서울에서 10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처리키로 했다. </p><p> </p><p>남북은 공동어로 등을 협의할 수산협력 실무협의회와 대북 농업지원을 맡을 남북농업협력위원회를 가동키로 하고 그 첫 회의를 7월 중 하기로 했다. 양측은 다음 장관급 회담을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백두산에서 열기로 했다. </p><p> </p><p> </p><p><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정동영 수석대표는 회견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지난주 면담을 구체화하고 특히 한반도 비핵화 실천에 대한 공감대를 이룬 것이 큰 의미"라고 말했다.</span></strong><span style="color:rgb(0,117,200);"> </span></p><p> </p><p>권호웅 단장을 포함한 북한 회담 대표 5명과 수행원 3명은 합의 발표 직전 청와대를 방문해 노무현 대통령과 45분간 만났다. 노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가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이라고 한 언급에 유의하며 이른 시일 내에 결단을 내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친서나 구두메시지는 없었다"고 말했다. 권호웅 단장을 비롯한 33명의 북측 대표단은 24일 오전 고려항공 전세기를 타고 평양으로 돌아간다.</p><p> </p><p> </p><p>최훈.이영종 기자 &lt;<a href="mailto:yjlee@joongang.co.kr">yjlee@joongang.co.kr</a>&gt;<br />사진=김춘식 기자 &lt;<a href="mailto:cyjbj@joongang.co.kr">cyjbj@joongang.co.kr</a>&gt; </p><p>[출처: 중앙일보] "북핵 해결 위해 실질 조치"<br style="clear:both;" /></p></div>]]></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4 Jun 2005 05:13:17 +0900</dc:date>
</item>


<item>
<title>[KBS 월드 라디오 - 목요진단 한반도 ] 2006년 북관대첩비 북한 인도</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7</link>
<description><![CDATA[<p> </p><iframe width="320" height="60" src="http://koreagca.org/interview.php" frameborder="0" style="border:0px;"></iframe>
<span class="fr-img-wrap"><img title="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src="/data/editor/1811/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alt="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span><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KBS News</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a href="http://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k&amp;menu_cate=history&amp;id=&amp;board_seq=348808" target="_blank" rel="noreferrer">http://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k&amp;menu_cate=history&amp;id=&amp;board_seq=348808</a>​</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외세 침략과 일제강점기, 동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 등 한국이 격변의 역사를 겪는 동안, 약탈과 도굴을 통해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17만여 점에 이른다. 이국 땅에서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는 문화재 환수를 위해서 남북이 함께 노력해서 결실을 맺은 사례가 있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된 지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북관대첩비 환수’ 과정을 따라가 본다.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 </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br /><strong>1905년 일본군에 의해 반출된 북관대첩비</strong></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임진왜란 승전 기념비인 북관대첩비는 1905년 일본군에 의해 반출된 뒤 행방이 묘연했다. 북관대첩비가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한 것은 1978년.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재일사학자, 최서면 박사에 의해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환운동이 전개됐다. 계속된 노력에도 북관대첩비를 반환하지 않았던 야스쿠니 신사는 2004년, 한국과 일본의 NGO 40개 단체가북관대첩비 환국을 위한 범민족운동본부를 발족해서 힘을 모으자 진전된 입장을 보였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 </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br />2005년 10월 12일, 북관대첩비 반환 합의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2005년 3월 1일. 한일불교복지협회 대표와 야스쿠니신사 최고 책임자가 만나북관대첩비 반환 문제를 논의했고, 야스쿠니 신사는 ‘북한과의 합의가 있으면 반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7년간의 반환 운동 끝에 민간 단체가 이 같은 약속을 받자 한국 정부는 북한에 회담을 제의했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당시 남북 관계는 2004년 김일성 주석 조문 문제와 북핵 문제 등으로 경색됐다. 하지만 2005년 4월 23일, 인도네시아에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5년 만에 양측 최고위급이 북관대첩비 환수를 매개로 대화의 물꼬를 텄고, 이어 북관대첩비 회담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이처럼 남과 북이 북관대첩비 환수에 뜻을 모으자 2005년 10월 12일. 북관대첩비 반환이 합의됐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 </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br /><strong>2016 3.1절 아침, 군사분계선을 넘어</strong>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본래 있던 함경북도 개성으로 인도돼 일제가 약탈해간 북관대첩비는 2005년 10월 20일 오후 4시 30분, 인천공항을 통해 고국 품으로 돌아왔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됐던 북관대첩비는 2005년 12월 16일, 제17차 남북장관급회담을 통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됐고, 20016년 3.1절 아침, 서울을 떠난 북관대첩비는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땅으로 들어섰다. 북한 개성의 성균관 앞마당에서 남측 관계자 150여 명과 북측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관대첩비 인도 인수식이 열렸다.</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 </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br /><strong>북한, 국보 유적 193호 지정</strong></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본래 자리인 함경북도 길주군. 현재의 김책시에 안치된 북관대첩비를 완전히 복원해서 북한의 국보유적 193호로 지정돼 있다. 남북협력사업의 결실로 해외 소재 한국문화재 반환과 관련된 분야에서 새로운 장을 연 북관대첩비의 귀환. 문화재 환수에서 처음 이루어낸 남북 협력의 사례가 앞으로도 이어져서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들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br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lt;영문기사&gt;</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span class="fr-img-wrap"><img title="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src="http://koreagca.org/data/editor/1811/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alt="464ec12ffe000e784772f614f75c8923_1541080866_0331.jpg" /></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KBS News</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p> </p><p><a href="http://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e&amp;menu_cate=history&amp;id=&amp;board_seq=348796" target="_blank" rel="noreferrer">http://world.kbs.co.kr/service/contents_view.htm?lang=e&amp;menu_cate=history&amp;id=&amp;board_seq=348796</a></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Some 170-thousand pieces of cultural relics made their way overseas through looting and theft during tumultuous periods of Korean history such as foreign invasions, the Japanese colonial era, and the Korean War.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Of this total, 66-thousand have been officially confirmed to be present in Japan. Today we recall an inter-Korean effort to return one of these cultural assets to its rightful place on the Korean peninsula.</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Bukgwan Victory Monument was taken to Japan by the military in 1905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In following the steps of how it was brought back to Korea after a century, we hear from Park Geun-mok, board chairman of the monument's memorial association who also served as head of a civic network dedicated to the asset's retrieval.</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Victory Monument was constructed in 1709 in the 33rd year of King Sukjong's reign in Kilju, North Hamgyong Province. It was erected to celebrate a victory against the Japanese invaders led by Jeong Mun-bu, general in the Kore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the Korean peninsula in the late sixteenth century. The monument is 187 centimeters high and 66 centimeters wide.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In 1905 during the Russo-Japanese War, a Japanese Army major of the Second Division who was stationed in this area took the monument to Japan as a war trophy. In Japan, a large rock weighing about one ton was laid on the monument so as to suppress the spirit of Korean resistance troops, a move inspired by Japanese superstition. The monument was left neglected at the Yasukuni Shrine until October 2005 when it finally returned to Korean soil through joint government and civic efforts in South Korea and also with North Korea’s cooperation. In March the following year, the monument was restored to its original location in Kilju, North Korea, after more than a century away.</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Bukgwan Victory Monument, which marks a triumphant battle in th e seven-year war against Japan in the late 16th century, was long thought lost by Korean historians and archeologists. But in 1978, the monument reemerged when Korean Japanese historian Dr. Choi Seo-myeon was able to confirm that it was kept at the Yasukuni Shrine in Tokyo. This sparked a movement to bring it back to Korea.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Japan was reluctant to return the monument, but eventually gave in when in 2004, some 40 NGO groups in South Korea and Japan launched an organization aimed at returning the monument to Korea</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On March first, 2005, the president of a Korea-Japan Buddhist organization met with the top official at Yasukuni Shrine. After the discussion, the shrine announced that it will return the monument if an agreement is also reached with North Korea. Civic groups pried this commitment from Japan after 27 years of effort. The episode also facilitated another level of inter-Korean dialogue. Here is Mr. Park.</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During the Asian-African Summit in Indonesia in April 2005, South Korean Prime Minister Lee Hae-chan proposed talks on the issue to North Korea’s parliamentary leader Kim Yong-nam. Lee said that the civic sector has already done the majority of the work and a government agreement between the two Koreas is all that is necessary to bring back the monument. The North Korean official promised full cooperation, which led to renewed inter-Korean dialogue.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Inter-Korean relations were strained at the time due to the North’s nuclear provocation and disagreement over how to deal with the tenth anniversary of the passing of North Korean founder Kim Il-sung in 2004. However, in spring the next year the two Koreas held high-level talks for the first time in five years since a summit in 2000. The agenda was retrieving the Bukgwan Victory Monument from Japan, which the two sides agreed to. As the Koreas came together, Japan then also agreed to return the monument in October that year.</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Following the signing of an official agreement, the Yasukuni Shrine finally opened its doors and released the Korean monument, and its journey home began.</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Bukgwan Victory Monument arrived at Incheon International Airport at 4:30 p.m. on October 20th 2005. Under tight security, a ceremony was held to celebrate its arrival. Civic group officials, in tears, were moved at the sight of the returned monument as they looked back on their past efforts to make it come true. Park describes the scene.</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It was beyond words. I felt so rewarded and so grateful that we could bring it back from the Japanese shrine. I still tear up thinking of that day. I see myself as part of a cultural army. Blood, sweat and tears were behind that achievement.  All of us who took part in the endeavor feel the same way.</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After the emotional ceremony, the monument was taken to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he two Koreas held ministerial talks in December that year and agreed to return the monument to its original site in North Korea's North Hamgyong Province.</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two sides agreed on further details of this plan during working-level talks in February 2006. During this meeting, the two Koreas also labeled the monument’s return as a cultural movement in the same spirit as the March first 1919 Independence Movement against colonial Japan. They agreed to send the monument to the North on March first in light of the day’s historical significance. Let's hear from Park about the monument crossing into the North.</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On March first, a South Korean delegation of about 150 government officials and civic group members traveled to Gaeseong, North Korea carrying the monument. It was a historic event that saw something that was lost in Korean history restored through cross-border cooperation. It also made us realize the foundational framework of inter-Korean coexistence.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On March first, 2006, the monument left Seoul and crossed the border into North Korea. At 11 a.m., a ceremony was held in the North Korean border city of Gaeseong to mark the handover. In attendance were some 50 North Korean officials and some 150 officials from South Korea including Mr. Park.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event led many people to believe there was no divided Korea when it came to retrieving cultural assets from Japan. It also left many to wonder what more can be done by the two Koreas if they work together.</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Following the handover ceremony, the monument was transported to its original site in Kilju county, North Hamgyong Province. North Korea thereafter fully restored the monument and designated it as national treasure No. 193. Mr. Park has yet to see the monument standing at its original site but hopes to one day. With three summit talks held this year, the two Koreas could make concerted efforts again to bring back cultural properties that remain outside the peninsula.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I would love to visit North Korea. Politics are actively under way at the moment so us in the civic sector are just observing. All my efforts were for the sake of Korean unification. With the same determination, I have many plans in store to play a bridging role toward unification of the two Koreas.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 </span></span></p><p><span class="fr-img-wrap"><span class="fr-inner" style="text-align:right;">The retrieval of the Bukgwan Victory Monument enabled through inter-Korean cooperation opened a new chapter in repatriation of Korean cultural relics from abroad. Hopefully this first incident of cross-border collaboration can lead to many more in the years to come so that more precious relics can make their way back to Korea.<br />​</span></span></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11 Oct 2018 22:50:1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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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동아일보] “북관대첩비 환국에 심신 다바쳐”범민족운동본부 출범</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6</link>
<description><![CDATA[<p><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358_4111.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358_4111.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358_4111.jpg" /></p><p>21일 발대식을 갖고 공식 출범한 ‘북관대첩비 환국 범민족운동본부’의 임원진. <br />왼쪽부터 원민식 회장, 신국환 의원, 하갑순 이사장, 초산 스님, 이한동 전 국무총리, 가키누마 센신 스님, 박근목 본부장. 안철민 기자</p><p> </p><p><br />1905년 일본군에 약탈돼 100년째 야스쿠니(靖國) 신사에 방치돼 있는 북관대첩비(北關大捷碑) 환국을 위한 범민족운동본부 발대식이 21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p><p> </p><p>이날 행사에서는 일본에서 북관대첩비 반환운동을 펼쳐온 가키누마 센신(시沼洗心·75) 스님과 한일불교복지협회 초산(樵山·76) 스님, 범민족운동본부 상임고문으로 선출된 이한동(李漢東) 전 국무총리 등 33인의 발기인이 채택한 결의문이 발표됐다.</p><p> </p><p>결의문은 “우리는 시대적 사명과 자긍심으로 굳건한 믿음과 뜻을 한데 모아 북관대첩비의 환국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우리는 금력이나 권력, 기타 불순한 세력의 유혹을 단호히 배격하고 오로지 북관대첩비의 환국에 매진한다. 우리는 충효신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북관대첩비의 환국을 위해 심신을 다 바친다”는 3개 항으로 이뤄졌다. </p><p> </p><p>결의문 채택 후에는 전쟁기념관의 박재광 학예연구관이 ‘정문부와 관북의병’, 세종대 오성 교수가 ‘북관대첩비가 한일북(韓日北)에 끼치는 시대적 영향’을 주제로 논문을 발표했다. </p><p> </p><p>이날 발대식에는 33인의 발기인 중 최성규(崔聖奎)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한명숙(韓明淑·열린우리당) 김원웅(金元雄·열린우리당) 신국환(辛國煥·무소속) 의원, 강현욱(姜賢旭) 전북도지사, 이광규(李光奎)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강신조(姜信祚) 세계문화재교류재단 총재, 은방희(殷芳姬)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김삼웅(金三雄) 독립기념관장, 장상(張裳) 전 이화여대 총장, 정규선(鄭奎善) 전 숙명여대 총장 등이 참석했다.</p><p> </p><p>권재현 기자 <a href="mailto:confetti@donga.com">confetti@donga.com</a> </p><p><br style="clear:both;" />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21 Jan 2005 17:57:1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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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한국경찰일보] ﻿북관대첩비 제자리에 반환한 애국(愛國)정신</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5</link>
<description><![CDATA[<p>- 북관대첩비, 러일전쟁 당시 일본으로 유출..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돼 있다 2006년 3월 함경북도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워져</p><p>- 박이사장,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숭고한 정신, 높은 기상과 강인한 정신” 강조</p><p>- 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 애국(愛國)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반환 이루어</p><p>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27_5875.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27_5875.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27_5875.jpg" /> </p><p> </p><p>지난 2005년 10월12일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함경북도 북평사 정문부 장군의 공을 기리는 북관대첩비 반환이 합의된 일이 있다. </p><p> </p><p><br />북관대첩비는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의해 발견돼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유출, 일왕에 바치는 예식을 치른 뒤 야스쿠니 신사에 보관돼 있다가 2005년 6월 우리 정부가 일본에 공식 반환을 요청, 정식으로 합의를 하게 됐다. 이후 2006년 3월 함경북도 원래 자리에 다시 세워졌다.</p><p>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50_9679.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50_9679.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50_9679.jpg" /> </p><p> </p><p> </p><p>선조 25년(1592년) 7월 15일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군은 22,000여명 대군을 거느리고 동북의 함흥으로 진격하여 함관령 이북 1,000리 땅을 점령했다. </p><p> </p><p><br />당시 우리 관군은 거의 모든 수령방백이 성을 버리고 도망하였으나 정문부(鄭文孚) 장군이 의병을 모아 내부 반도평정과 동시에 피난 나와 있던 왕자 임해군(臨海君)과 순화군(順和君) 등을 왜구에게 넘겨 주었던 역도 국세필과 정말수, 국경인 등을 포박, 참수하고, 명천 일대를 수복했다.</p><p> </p><p><br />북관대첩은 백성들이 의병에 크게 호응하여 나중에는 그 수가 7,000명이 넘었는데 경성전투, 길주-장평전투, 쌍포-임명전투, 길주 남문 밖 전투, 단천전투, 백탑교전투, 여진족을 격퇴시키는 등 총 8차례의 전투 속에 왜군을 크게 격파하여 함경도 지역에서 몰아낸 큰 전투 등을 말한다. </p><p> </p><p><br />북관대첩비는 이 전투를 기리는 비석인데 이 비석이 뜻있는 관련 남북지사들에 의해 제자리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 반환사업에 사단법인 한국녹색문화진흥회와 이사장 박근목(朴根穆)씨의 공이 컸다. </p><p>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69_1392.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69_1392.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69_1392.jpg" /> </p><p> </p><p>박 이사장은 “정부는 '100대 민족문화상징'을 선정 발표한 바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며, 미래를 향해 한국 민족문화의 유전자를 육성해 부가가치를 창출함을 물론 원융무애 조화상생으로 국제교류를 통한 상징적인 민족문화의 꽃을 피우고자 한다”고 설명했다.</p><p> </p><p><br />이어, “우리는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숭고한 정신, 높은 기상과 강인한 정신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영토를 넓혀 지구촌 한류바람으로 한국의 위상을 높히고 남북 문화예술 민간교류를 통한 화해 협력으로 민족공존의 기틀을 마련하여 한반도 통일기반조성과 동북아 평화 구축에 헌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p><p> </p><p><br />또한,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진취적 기백과 새로운 독창성이 담긴 지혜를 모아 민족웅비의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시대적 소명으로 민족문화예술 콘텐츠를 ICT산업으로 승화, 알리고 높이며 빛나게 하여 사랑과 소통을 추구하는 생명과 사랑과 평화의 문화원리를 창조하는 파수꾼이 되어 평화통일의 메신저가 될 수 있도록 변함없는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p><p> </p><p> </p><p>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82_3389.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82_3389.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5182_3389.jpg"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박근목(朴根穆) 이사장 <br style="clear:both;" /></p><p><br />나라사랑하는 마음, 즉 애국(愛國)은 정부만 하는 것이 아니고 말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다는 것을 사단법인 한국녹색문화진흥회와 박근목(朴根穆) 이사장이 단적으로 잘 보여 주고 있다. 그 진정성이 얼마나 지극했으면 국가도 힘든 일을 민간이 주도적으로 국가를 도와 남북을 넘나든 정신으로 이루어냈는지 숙연할 정도다. </p><p> </p><p> </p><p>한국경찰일보 권병찬 편집국장 <a href="mailto:kpilbo@kpilbo.co.kr">kpilbo@kpilbo.co.kr</a>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9 Oct 2018 17:32:4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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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북관대첩비 반환 제 7주년 기념 포스터</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4</link>
<description><![CDATA[<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868_9347.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868_9347.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868_9347.jpg"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북관대첩비 반환 제 7주년 기념 포스터</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충의공 정문부 장군 북관대첩<br style="clear:both;"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01 Nov 2018 18:33: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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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아이뉴스24] 文 대통령, 동북아평화협력단 의원들 만나 안보 협치</title>
<link>https://koreagca.org/bbs/board.php?bo_table=m27&amp;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p>[아이뉴스24 채송무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국회 동북아평화협력 의원 외교단 소속 의원들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계속되고 있는 한반도 안보 위기와 관련해 의견을 교환하는 협치의 일환이다. </p><p> </p><p>문 대통령은 11일 오후 4시30분부터 5시40분까지 국회 동북아 평화협력 의원 외교단 소속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두관 민주당 의원,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을 만나 환담을 나눴다. </p><p> </p><p 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img title="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646_1324.jpg" src="/data/editor/1811/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646_1324.jpg" alt="0d24b7958dee4a4903a070c1493fde9e_1541064646_1324.jpg" /> </p><p> </p><p> </p><p>의원 외교단은 한반도 위기 상황과 관련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절대로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북미간 대화를 촉구하는 한편 한반도 평화를 위한 한미공조와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미국측에 전달하였다"고 방미 성과를 설명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으로 밝혔다. </p><p> </p><p>의원들은 아울러 이같은 의원외교가 단발적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성과를 축적하고 또 구축된 인적 네크워크를 잘 관리하여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공공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p><p> </p><p>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의 안보상황이 엄중하고, 온 국민의 힘을 하나로 모아야 하는 이 때, 추석연휴 기간에도 불구하고 국회 차원의 초당적 외교를 펼쳐주신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p><p> </p><p>문 대통령은 현재 한반도 안보 상황 및 국제사회와의 공조 대응 노력에 대해 설명하면서 각 당의 의견을 모아 한반도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의 노력에 힘을 보태달라고 당부했다.</p><p> </p><p>/채송무기자 <a href="mailto:dedanhi@inews24.com">dedanhi@inews24.com</a><br />▶프리미엄 뉴스서비스 아이뉴스24<br />▶연예스포츠 조이뉴스24, 생생한 라이브캐스트<br />[ⓒ 아이뉴스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br /></p>]]></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1 Oct 2017 19:33:2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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