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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 관련 보도자료

[중앙일보] 북관대첩비 반환 ‘숨은 공로자’ 재일교포 하갑순씨
"“신사에 방치된 대첩비 처음 보고 울었는데 … 내가 고향 가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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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6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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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용철 기자]

 

미수(米壽.88세)를 한해 앞둔 하갑순 북관대첩비환국범민족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좋지, 좋아"라는 말을 거듭했다. "이제 걱정이 없다"며 기뻐했다. 28일 만난 할머니는 정정했다. 지난 수년간 공을 들인 북관대첩비(작은 사진)가 드디어 '고향'인 북한 땅을 찾아간다는 사실에 마냥 행복해했다.

 

일본 도쿄 인근 지바(千葉)시에 살고 있는 하씨는 "드디어 할아버지의 원혼을 풀어드렸다"고 말했다. '할아버지'란 임진왜란 당시 함경도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던 정문부(1565~1624) 장군을 가리킨다. 하씨는 "남편의 성이 정씨"라며 정문부 장군을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북관대첩비는 정 장군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숙종 34년(1707년) 함경도 길주군(현재 함경북도 김책시)에 세웠던 비석이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에 약탈당해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됐다가 지난해 10월 한국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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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씨는 북관대첩비 반환의 '숨은 공로자'다. 대첩비의 한국 이양을 성사시킨 일한불교복지협회장 가키누마 센신(76) 스님을 움직인 주인공이다. 2004년 11월 북관대첩비환국범민족운동본부를 설립해 그간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넷째 딸이 몇십 년 전부터 센신 스님과 절친하게 지냈습니다. 저도 자연스럽게 스님의 활동을 알게 됐어요. 스님이 저를 '어머니'라고 부를 정도죠. 2년 전 스님이 '북관대첩비와 관련해 다시는 한국에 가지 않겠다'고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대첩비 반환을 둘러싼 한국 정부의 대응이 소극적이라 크게 실망했던 거죠. 이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이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끝날 수는 없었죠. 그래서 저도 적극 뛰어들었습니다."

 

하씨는 '여장부'스타일이다.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그는 열 여섯에 재일동포 사업가와 결혼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타이어 제조.유통, 건설.운송업 등을 손대며 제법 큰 사업을 일으켰다. 민단.조총련 가리지 않고 가난한 동포를 지원하는 데도 앞장섰다. 지금도 민단 고문을 맡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의 풀숲에 버려진 대첩비를 처음 보았을 때의 비참한 심정이란…. 비석 위에는 돌멩이도 수북이 쌓여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셨을까요. 그 눈물을 이제 닦아드리게 됐어요. 그것만 생각해도 바로 눈물이 흘러요."

 

 '노할머니'의 눈가가 순간 축축해졌다. 잠시 말문도 닫혔다.

 

 "자랑할 건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안심이 돼요. 원(願)을 이룬 셈이죠.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건 다했습니다."

 

하씨는 1일 개성 성균관 명륜당에서 열리는 북관대첩비 인도인수식에 참석한다. 첫 방북이다.

 

 "개성에 조카들이 살고 있습니다. 6.25 때 납북됐던 남동생의 아이들이죠. 지난해 조카들로부터 편지도 받았답니다. 공식 일정에 없는 일이라 조카들을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그래도 가족 사진, 대첩비 사진 등을 준비했어요. 그간 고모가 한 일을 조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하씨의 좌우명은 "인간은 정의롭게 옳은 길을 가야 한다"다. 이번 반환운동도 '옳은 길'로 판단해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조국을 도우려고 74년 경남 합천에 해인중학교를 세웠다. 2004년에는 한민족여성지도자포럼, 한민족문화선양회를 출범시켰다.

 

대첩비 반환은 여러모로 의미가 큽니다. 한국과 일본의 화해를 증진하고, 남한과 북한의 긴장을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겁니다. 다만 남한에 공개된 기간이 넉 달에 그쳐 아쉬운 면도 있어요."

 

하씨는 앞으로도 일본에 있는 한국 문화재 반환운동을 거들겠다고 말했다. 또 여생을 남을 돕는 데 바치겠다고 다졌다. 그게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란다. 그의 남은 희망은 통일. "차 한 잔이라도 나눠 먹는 게 사람의 도리이듯 남이든, 북이든 서로 돕는 일에는 조건을 달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박정호 기자 <jhlogos@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북관대첩비 반환 ‘숨은 공로자’ 재일교포 하갑순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