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의 반환 경위
|
임진왜란 당시 함경북도 북평사였던 정문부 장군이 의병을 모아 왜군을 격퇴한 공을 세워 숙종 (1907년) 때에 함경북도 길주시 임명리(현, 김책시 임명동)에 민·관 합작으로 세운 승전비로써, 러·일 전쟁 때인 1905년 일본군 미요시 중장이 일본으로 강탕, 일본 황실에서 보관하다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해 왔다. 1909년 일본 유학생이었던 조소앙 선생이 야스쿠니 신사에서 우연히 발견, 대한흥학보에 “북관대첩비 소감”이라는 글을 썼다. 이후 최서면(국제한국연구원장)이 1978년 이 비를 확인한 뒤, 정부와 정씨 문중, 민간단체, 개인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반환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하다 일·한 복지협회(가끼누마쎈신 스님, 초산스님)와 한민족 여성지도자포럼 (한국여성지도자명감 편찬위원회) 이사장 하갑순 간 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박근목 본부장)를 결성(2005년 1월), 한국, 일본, 북한(조선 불교도연맹) 민간단체 간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정신을 실천, 계승하기로 의기투합하고 중국 북경에서 남북 민간단체 간 합의서를 채택, 야스쿠니 신사 이사회 결의와 한·일·북한 당국자 간 합의를 거쳐 2005년 10월 20일 일본정부로부터 반환받아 민족자존을 회복한 역사적인 민간외교의 쾌거로 2006년 3월 1일 북한 개성시에서 인도인수식을 거행하고, 원소재지인 함북 김책시 임명동에 복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