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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 관련 보도자료

[오늘의 한국] 북관대첩기념 사업회 발대식 해외문화재 되찾기 운동 전개
"(사) 한국녹색문화진흥회 박근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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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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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기념 사업회 발대식 해외문화재 되찾기 운동 전개
(사) 한국녹색문화진흥회 박근목 이사장

 

북관대첩비 반환 7주년을 기념하여 ‘북관대첩기념사업회 발대식’ 이 열렸다. 이 행사는 (사)한국 녹색문화진흥회(이사장 겸 총괄회장 박근목)이 주최하고 (사)한민족운동지도자 연합회와 나라사랑 국민운동본무가 주관했으며 문화쳬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이 후원했다. 임진년 흑룡의 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해외에 불법유출된 문화재 반환운동의 일환으로 지난 6월 14일(목) 오후 3시, 국회헌정기념관에서 개최됐다.

 이 행사를 빛내기 위해 정관계, 재계, 종교계 및 사회단체 등 유명인사 500여명이 참가했다. 북관대첩기념사업회는 임진왜란 당시 한민족의 자존, 충절의 수범을 보인 정문부 장군이 이끌었던 의병들의 고귀한 순절을 기리고 일본에 불법 강탈되었던, ‘북관대첩비’를 일본정부로부터의 반환을 계기로 민간외교의 쾌거를 이룬 역사적 사건이다. 해외 불법유출 문화재 되찾기를 위한 제2북관대첩 반환운동을 목적으로 설립된 우국충정의 민간애국단체이다.

 

(사)한국녹색문화진흥회는 2005년 1월 국보급 문화재인, 북관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 본부를 발족시켜 그해 10월, 민 · 관 공동노력과 북한 당국의 협력으로 일본정부로부터 100년만에 북관대첩지를 반환받아 북한에 인도하여 원소재지인 함경북도 길주에 복원케 함으로써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동북아 평화정착에 역사적 단초를 구축했다.

 

원소재지 함북 길주에 복원
 원소재지인 함북 길주에 복원, 이날 행사에는 상임고문인 이한동 전 국무총리, 전 북관대처비환국범민족운동 본부장 박근목 이사장과 한일불교복지협회 초산(樵山)스님 (전 북관 대첩비 환국범민족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 등 33인의 발기인이 채택한 결의문이 발표됐다.

 결의문은 “우리는 시대적 사명과 자긍심으로 굳건한 믿음과 뜻을 한데 모아 북관대첩기념사업을 충실히 수행한다. 우리는 금력이나 권력, 기타 불순한 세력의 유혹을 단호히 배격하고 오로지 해외불법유출문화재 반환에 매진한다. 우리는 충, 효, 신의 정신으로 우리 민족의 영원한 번영과 역사바로세우기에 심신을 다바친다.” 등의 3개항이다.

 결의문 채택 후에는 박근목 이사장의 천황과 일본정부에 대하여 이성근 대표회장이 중국정부에 대하여 김형주 공동회장이 북한 당국에 대하여 잃었던 문화재를 찾기위해 남북 간에 전담위원회 구성을 제안 하는 메시지전달이 있었다. 이후 “북관대첩 반환과 복원”에 대한 영상물이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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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관대첩비’란 무엇인가

 임진왜란(1592-1598) 발발 당시인 선조 25년(1592년) 7월 15일에 기요마사군이 22,000여명 대군을 거느리고 동북의 함흥으로 진격하여 함관령 이북 1,000리 땅을 점령하였다. 관군은 거의 모든 수령방백이 성을 버리고 도망하였으나 전쟁을 하려 해도 군사가 없었던 정문부 장군은 의병을 모아 내부 반도평정과 동시에 피난을 나와 있던 왕자 인해군과 순화군 등을 왜구에게 넘겨 주었던 역도 국세필과 정말수, 국경인등을 포박 · 참수하고 명천 일대를 수복하자, 백성이 의병에 크게 호응하여 나중에는 그 수가 7,000명이 넘었다.

경성전투, 길주, 장평전투, 쌍포 · 임명전투, 길주 남문밖 전투, 단천 전투, 백탑교 전투, 여진족을 격퇴시키는 총 8차례의 전투 속에 왜군을 격파하여 함경도 지역에서 몰아낸 큰 전투이다.

 임란 당시 정문부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규합, 왜군을 격퇴한 전공을 기념해 숙종 33년(1709) 함경북도 길주군 임명리에 세워진 승전기념비이다. 1905 러 · 일 전쟁 때 이 지역에 주둔한 일본군 제 2사단 17여단장 이께다 소장이 전리품으로 일본으로 가져간 뒤 항일의병의 기상을 제압하고자 탑신에 큰 바위돌을 올려놓은 채로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5년 10월, 100년만에 민 · 관 공동 노력으로 일본정부로부터 반환받아 북한에 인도하여 원소재인인 함경북도 길주에 복원한 국보급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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